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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춘추] “개갈 안 나네”

2011년 02월 07일(월) 13:46 [(주)온양신문사]

 

↑↑ 전홍섭 / 서울일신여중교장, 아산 영인 출신

ⓒ 온양신문

아산 사람들이 자주 쓰는 “개갈 안 난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 지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른다. 외지에서 시집 온 며느리가 만든 음식을 시어머니가 먹어 본다. “개갈 안 나네.” 하며 타박을 한다. 며느리는 그 뜻을 모른다. “뭐라고요? 어머님!”하면서 자꾸 되물을 뿐이다. 사투리는 아니지만 특정 지역에서 많이 쓰는 관용어인 셈이다.

언뜻 듣기에는 비속한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 말의 유래를 정확히 알고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기본적으로 언어는 사회적 산물이다. 그래서 말의 연원을 캐는 어원학(語源學, etymology)은 사람이 살아가는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물론 이 어구의 핵심인 ‘개갈’이라는 단어는 우리말 사전에 나오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 민속놀이인 ‘윷놀이’와 관련이 있다. ‘윷놀이’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대표적 세시풍속이다. 본격적인 농작이 시작되기 전, 한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쳐 보기도 한다.

이처럼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한 윷놀이는 집단놀이로서 마을 주민이 함께 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도 기능적으로 적응하면서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설 명절이 되면 도회의 아파트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윷가락을 던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개갈’이라는 말이 윷놀이의 무엇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잘 아는 것처럼 윷놀이는 여러 사람(보통 4~8명)이 편을 짜서 서로 번갈아 윷을 던져 그 패에 따라 윷말을 써서 4동이 먼저 나면 이기게 되는 재미있는 놀이이다.

여기서 윷말을 이르는 명칭이 모두 동물의 이름에서 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말판에서 한 밭을 가는 ‘도’는 돼지에서, 두 밭의 ‘개’는 개, 세 밭의 ‘걸’은 양, 네 밭의 ‘윷’은 소, 다섯 밭의 ‘모’는 가장 빠른 ‘말’에서 왔다. ‘걸’이 특이한데 한자에서 수놈의 거세(去勢)한 양을 ‘갈(羯)’이라고 했다. 후세에 ‘걸’로 음이 바뀐 것이다. 이들은 모두 농가에서 기르는 동물로서 사람들과 친숙한 인축(人畜)들이다.

그러면 이 어구는 윷놀이의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일까? 다섯 가지의 윷패 중에서 '개'나 '걸'은 확률적으로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한다. 마지막 승부에서 ‘개’나 '걸'이 나오면 쉽게 이길 수 있는 판인데 계속 '도'가 나와 지고 말았다. 부아가 치미는 일이다. 자연 놀이꾼과 응원꾼들의 흥분과 탄식이 교차되면서 시끄럽다. 그 흔한 '개'나 '걸'도 못했으니 얼마나 윷을 못 노는 사람이겠는가. 패한 윷꾼들은 "개갈 안 나네!." 하면서 투덜댔던 것이다.

그래서 ‘사물이나 사람이 변변치 못하거나 어떤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이 말을 썼던 것 같다. 이처럼 언어는 현실적 삶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말이 생명력을 가지고 사회에서 통용되고 전승되는 것이다.

윷놀이의 말판에 등장하는 가축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직 가시지 않은 가슴 아픈 사연이 떠오른다.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도 지나고 지금이야말로 ‘까르르‘ 하면서 ’한사리‘를 외칠 때이다. 마을마다 윷놀이의 흥겨운 가락이 시끌벅적하게 들려 올 시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농촌은 그렇지 못하다. 윷말에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 발굽이 둘로 갈라진 소와 돼지에게 감염되는 구제역(口蹄疫)이 전국적으로 창궐(猖獗)하였다.

그간 아산 지방에도 조류 독감과 구제역의 방역 망이 뚫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올 겨울 무수히 많은 소와 돼지가 살(殺)처분 되었다. 자식 같이 키워 온 동물들이다. 특히 소는 눈망울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물이 아닌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 축산 농민들은 깊은 시름에 젖어 있다. 정말 인류에게 내린 재앙인 것 같다. 인간의 탐욕이 가져 온 결과가 아닌지 모르겠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 원리에 따라 돌아가는 윷놀이의 운행. 박달나무를 반으로 쪼갠 4개의 윷가락이 멍석 위에 구르면서 엎어지고 젖혀진다. 우연성의 원리와 윷말쓰기의 합리성이 윷판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재미있게 이루어지는 게임이다. 윷꾼들은 '도·개·걸·윷·모' 하면서 함께 어깨춤을 춘다.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린 끝가락이 떨어진다. 다른 윷가락을 때리면서 만들어 내는 반전(反轉)의 묘미는 윷놀이의 극치를 이루는 장면이다.

예로부터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연초부터 구제역으로 찌든 농민의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어서 빨리 진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의 민속놀이 중에서 집단놀이는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그 결과 마을의 안녕과 풍농(豐農)을 기원함으로써 마을 공동체가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 민족의 고유한 윷놀이가 이 정월에 마을의 축제로 신명나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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