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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택 보는 쪽이 나눠야 농민도 산다

강태언 전 온양시 의회의장

2012년 03월 30일(금) 11:01 [(주)온양신문사]

 

원로에 길을 묻다
·원예조합 탄생의 산파 역할
·선대부터 과수 농사
·신용사업, 하나로마트 추진 적자 탈출
·정보 잘 알고, 마음 반듯해야 농민도 성공
·시명칭 ‘온양’주장 단식 “죽는 줄 알았다”
·조카에게 “더 강해져라”


↑↑ 강태언 전 온양시 의회의장

ⓒ 온양신문

신용사업, 하나로마트, 과수 수출 등 원예조합의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일궈 낸 강태언 전 조합장의 삶은 원예조합과 함께한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예조합장 9선, 30여년을 원예조합과 함께한 그다.

“원래 과수원집에서 태어나 아버지때부터 계속 과수 농사를 지었다.”는 그에게 있어 과수는 자연스럽게 일상이 됐다. 그 자연스러움은 그를 농가들의 조합 구성으로 이끌었고, 더 나아가 그의 열정이 보태져 지금의 번듯한 원예조합이 탄생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과수에 온 생을 쏟았다.

- 처음 조합 결성 시 직원 5명
“처음 조합을 결성했을 때 직원이 5명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못 먹여 살려 돼지 장사까지 했었다.”

과수 농사를 지으면서 필요로 의해 만들어진 조합이 자금이 없어 힘들어 하는 것에 어떻게든 자생해서 크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던 그는 신용사업으로 눈을 돌린다.

그는 중앙회를 쫓아다니면서 설득한 결과 승인을 받아 단위조합에서 금융사업을 실시하게 됐다. 그렇게 원예농협은 차츰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트다. 그가 마트를 시작하려 할 때 주변에서는 “전문조합이 무슨 마트냐”며 만류했지만, 그는 “내 재산도 내 놓겠다.”라며 밀어 붙였다. 그 결과 현재 방축동의 하나로 마트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무조건 반대만 하면 저렇게 클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감사한다고 하면서 반대만하는 것은 조합 발전에 기여가 안 된다.”라는 그의 말이 대안 없이 마냥 비판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던져주기도 한다.

- 한미FTA, 농민의 마음가짐이 우선
“당신네 농업은 기계화로 인해 대량생산으로 생산 원가 절감하지만, 한국의 농업은 손으로 직접 모판을 만들고 낫으로 베고 한다. 이러한 나라와 개방을 하자는 것은 비신사적이지 않은가?”

20여년 전 미국의 칼라이스 장관을 만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10년 유보시키기 위해 그가 내 뱉은 말이다.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투쟁 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그거하다 매 맞아 죽을 뻔 했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여의도 KBS앞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도 벌이고, 온양 조합장들 제네바에 가서 머리도 깎았었던 일 등 그가 겪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이와 관련해 한미FTA체결로 위기를 맞게 된 농업에 대한 극복방안을 물었다.

강태언 전 조합장은 “우선 농민들이 일을 성실히 해 나가면 이제는 기본 틀이 조성 됐기 때문에 뒷받침이 된다고 본다. 농민이 잘 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 정부에서 뒷받침 해 주는 지원들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고 정부정책에 잘 맞춰하면 된다.”며 우선적으로 농민의 마음가짐이 반듯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정부의 재정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농업에 더 투자를 해 줘야한다. 한미FTA로 인해 자동차 산업이 유리하면 벌은 만큼 농촌 쪽으로 환원해 줘야한다. 한쪽만 으로 치우치는 혜택이 아니라 골고루 혜택을 보게 해 줘야한다.”며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혜택의 나눔이 있어야 하는 점을 짚었다.

또한 강태언 전 조합장은 “역으로 우리의 농산품 수출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 예로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배의 수출을 들었다.

“미국에 배를 가져가서 시식회를 여는 등 홍보를 많이 했었다. 처음에 적자라서 농가들이 많이 희생 됐다. 그러나 당시 손해를 감수해 내면서 노력한 결과 오늘날의 이익이 창출 된 것이다.”라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충고하기도 했다.

- 시명칭으로 단식투쟁하다 죽을 뻔
“단식투쟁하다 죽을 뻔했다. 몰래 뭘 먹을 수가 있어야지. 다 같이 굶고, 시민들이 와서 같이 밤을 새우다 보니 빵 하나라도 몰래 먹을 새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하다 큰 일 날 뻔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평생 동안 제일 많이 굶어 본 경험을 웃으며 말하는 강태언 전 조합장은 지난 시의원활동을 할 당시 ‘온양시’와 ‘아산시’의 합병 과정에서 시 명칭을 투쟁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 어느 지역을 가든 ‘온양’이라고 하면 다 알았었고 ‘아산’이라고 하면 어디인지 몰랐었다. 그만큼 알려진 이름을 했어야 했는데…”

그는 여전히 ‘온양시’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듯하다.

그렇게 그의 2대 의장 활동은 단식투쟁이라는 큰 경험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후 그는 다시 원예조합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 조카에게, “좀 더 강해져야 한다”
유독 강태언 전 조합장의 집안은 알려진 바와 같이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더욱이 그는 “골치 아프다.”라며 이와 관련된 발언들을 아끼는 모습이다.

막내 동생의 아들인 강훈식 민주통합당 위원장은 그에게 조카가 되고, 강태봉 전 도의장은 그의 동생이다.

이번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패한 조카에게 그는 “좀 더 강해져야 한다.”는 짧은 말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으나, 그 말 속에는 짙은 서운함도 묻어나고 있었다.

이혜진 기자  seinhj@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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