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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각 지역의 3.1운동사(신창면)-1

헌병주재소와 면서무소 등 공격…격렬시위 양상

2018년 12월 17일(월) 09:02 [온양신문]

 

▲박민성의 읍내시위 기도

신창면의 3.1운동은 3월 18일 박민성(朴敏成·1887년 10월 20일~1943년 11월 10일)에 의해 서막이 열렸다.

18일 오후 1시쯤 신창면 오목리에 주소를 둔 박민성은 신창 읍내시장에서 조명원과 이상균을 만나 “오늘 장날에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만세를 부를 것이니 함께 따라 부르라”라고 권유했다. 신창의 읍내시장은 현재 신창읍내 3거리에서 공북정이 복원된 옛 관아터로 올라가는 읍내북길을 말한다.

박민성은 다시 신창 공립보통학교에 가서 학생인 김안기에게도 똑같이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유하였다. 이것은 3월 11일부터 온양면에서 일어난 온양공보생들과 장꾼들의 장터 시위에서 시작해 아산일대로 확산된 만세운동에 크게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위기도는 실패해 박민성이 바로 체포됨에 따라 불발로 끝났다. 박민성이 4월 9일 공주법원에서 판결을 받은 사실로 볼 때 3월 18일 이후 체포돼 구금됐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당시 시위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은 대부분 실형을 선고받은데 비해 박민성은 태 90도를 받았다. 태 90도는 통상 헌병분견소에서 즉결처분으로 결정하는 가장 큰 형벌인데 즉결처분이 아니고 재판을 통해 태형을 받기는 드문 경우였다.

폭력이나 극렬시위가 아닌 단순한 시위선동과 권유라서 실형을 선고하기에는 혐의가 미약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 ▲학성면 박민성 태90도 보도 기사. ‘매일신보’, 1919. 4. 20.

ⓒ 온양신문


↑↑ ▲신창 읍내리 시장(읍내북길)

ⓒ 온양신문



▲학성산 봉화시위와 일제 관서 공격

그러나 신창면에서 일어난 본격적인 독립만세운동은 4월 2일(음력 3월 2일)에 이덕균의 주도로 전개됐다. 당시 신창주민들은 3월 1일 이후 전국 각 지방에서 한국독립만세라 외치는 독립시위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듣고 그 취지에 찬동해 이와 동일한 행동을 하고자 결심했다.

오목리에 사는 주동자 이덕균(李悳均)은 박진화ㆍ정윤흥ㆍ김양순ㆍ김금복ㆍ강순화ㆍ손천일ㆍ김원배ㆍ승일상ㆍ이상균ㆍ김학삼ㆍ김상준ㆍ신흥남ㆍ이창균ㆍ강복개 등과 함께 오후 8시경 읍내리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오목리 주민들도 참여한 약 200명97)을 이끌고 학성산(184.1m)의 봉우리에 올라가서 봉화를 피우고 1시간여 동안 대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때 주동자인 이덕균이 군중에게 큰소리로 ‘만세를 부르는 이유를 알고 있느냐’고 말했다. 다수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고 답하자, 이덕균이 ‘미국의 학교를 졸업한 민(閔) 아무개는 지금 그 나라에 있으면서 강화회의에 임해 한국의 독립을 운동하고 있고 이에 최근에 독립하기에 이르러서 그 때문에 자신(이덕균) 등은 만세를 부르는 것인데, 산 위에서 불러서는 해결되지 않으니 자금부터 읍내리로 가서 만세를 부르고 관청을 파괴하자’고 말했다.

이에 사람들은 이덕균의 말대로 산위에서 내려가는 도중에 모두 돌을 주웠다. 이들은 먼저 면사무소 앞에 가서 모두 만세를 4, 5회 부르고 정윤흥이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미닫이문 한 장을 파괴하였다. 그중 약 40명은 헌병주재소로 갔고 약 15명은 문 안으로 들어가 만세를 불렀다. 이때도 정윤흥이 주재소에 돌을 던져 현관등의 유리를 파괴했다.

↑↑ ▲학성산의 모습

ⓒ 온양신문


↑↑ ▲헌병주재소 자리(읍내북길33 박노현댁)

ⓒ 온양신문


↑↑ ▲면사무소자리(읍내북길31 엄유섭댁)

ⓒ 온양신문


↑↑ ▲신창공립보통학교(현 신창초등학교 교사)

ⓒ 온양신문



다시 밤 10시경 약 40명의 군중들은 신창공립보통학교의 운동장으로 몰려가 주먹 크기의 돌을 주워 박진화와 강달성이 가장 먼저 교사 서북쪽 교실을 향해 3회 돌을 던져 유리창을 파괴했다.

박진화는 학교 소변기 1개도 깼다. 두 사람에 의해 유리창이 깨지자 기세가 오른 군중들이 합세해 맹렬히 돌을 던져 교사의 유리창 272매, 미닫이문 4개를 파괴했다.

재판기록에는 신창공립보통학교 교장 종방교(宗方喬) 소유 가옥의 미닫이문 2개도 파괴됐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아마 교장 사택도 공격을 받은 것 같다.

당시 시위진행에는 약간의 시간적 편차가 있다. 재판기록을 보면 시위 군중들이 먼저 면사무소, 주재소, 보통학교 순으로 만세를 부르고 습격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헌병주재소 자리는 읍내북길 33 박노현 씨 댁이고, 면사무소 자리는 바로 아랫집인 읍내북길 31 엄유섭 씨댁(읍내리 367-2번지)이다.

따라서 학성산에서 내려오면 가장 먼저 헌병주재소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재판기록에 신창면장 박준섭은 오후 10시경 시위군중이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숙직실 문호 미닫이 3개가 손괴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헌병주재소의 일본 헌병 상등병 관야장이(管野庄二)는 오후 9시 30분경 박진화가 내습해 돌을 던져 현관등 유리 4장을 파괴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신창보통학교 교장 종방교는 오후10경에 박진화 등이 내습하여 돌을 던지고 학교 유리창 272장, 미닫이문 4장을 파괴했다고 했다. 관청의 위치와 사건 관련자들의 시간증언을 보면 주재소가 가장 먼저 공격당하고 면사무소, 보통학교 순으로 사건이 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4월 2일 전개된 신창면 만세시위는 아산지역에서 전행된 시위 중에 가장 격렬한 폭력시위였다. 이러한 사실에 놀란 일제 조선군사령부는 신창 시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긴급 전문으로 보고하였다.

‘아산군 신창
2일 오후 9시경 학성면 신창 부근의 산위에서 다수의 폭민들이 봉화를 올리고 시작하여 신창헌병주재소에 몰려와 문을 파괴하고 면사무소에 돌을 던졌으며, 보통학교를 습격하여 창문을 전부 파괴하고 해산하였다. 헌병 7명 보병 3명이 급히 출동했다’


위에서 보듯이 일제는 헌병 7명과 보병 3명을 긴급히 출동시켜 주동자들을 체포, 구금하고 재판에 부쳐 모두 기소했다. 여러 재판기록을 보면 이 운동을 전개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덕균이었다. 봉화시위 중 신창면사무소, 신창헌병주재소, 신창공립보통학교를 습격 파괴하라는 선동을 한 것이 이덕균이라고 한다.1

이 날 시위에서 이덕균은 체포되지않아 재판기록이 없어서, 그의 신상에 대해서 자세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연안이씨라는 사실과 연안이씨 신창지역 가승에는 올라있음이 확인됐다.

족보를 보면 1930년생 아들을 두었는데 역산해 보면 그는 36세에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띠라서 이렇게 만혼이 될 정도로 10여년을 도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 ▲신창면 복역자 명부

ⓒ 온양신문

이 날의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은 모두 15명이었다. 박진화(35, 인력거부, 신성리), 정윤흥(31, 농업, 읍내리), 김양순(1881~1936, 농업, 읍내리 344), 김금복(1899~1955, 농업, 읍내리), 강순화(31, 농업, 읍내리), 손천일(1882~?, 농업, 읍내리), 김원배(36, 농업, 읍내리), 승일상(1889~1953, 농업, 읍내리 187), 이상균(31, 농업, 읍내리), 김학삼(36, 농업, 읍내리), 김상준(19, 농업, 읍내리), 신흥남(19, 농업, 읍내리), 이창균(22, 농업, 읍내리), 강복개(18, 농업, 읍내리), 강달성(31, 농업, 읍내리)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앞의 14명이 한꺼번에 기소가 됐고, 강달성은 별도로 재판을 받았다. 아마 도피 중에 늦게 체포돼 기소가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앞의 14명의 판결문을 보면 이들은 이덕균의 지시에 따라 해당 장소들에 투석했고 그 과정에서 박진화가 열성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박진화의 본명은 박진화(1885~1941. 신창면 신성리 128)로 박칠동이라는 이명도 있었다. 그는 군중을 지도하고, 보통학교에 도착하자 돌을 던져 유리창 272장, 문 4짝을 부쉈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의 직업이 인력거부(人力車夫)라고 표기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진화 등 체포된 15명은 전원 실형을 선고받았다. 인명에 대한 살상없이 유리창, 문짝을 파괴하는 데 그친 이 사건에 대해 일제는 가혹한 형벌을 가했다. 박진화는 주동자로 인정돼 가장 긴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복역 중 1920년 4월 황태자 이은(李垠, 영친왕)의 결혼식 은사로 형기가 절반 감형돼 1년 6월을 복역했다.

정윤흥외 13인은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으나 복심법원 및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됐고 김원배, 승일상만 징역 6월로 감형됐다.

강달성의 경우에도 사건의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신창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 돌을 던졌고 유리창을 깼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앞서 13인과 강달성은 모두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박진화의 경우 애초에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20년에 1년 6개월로 감형 됐다고 한다.

한 면지역에서 15명이나 1년 6개월의 수형생활을 한 경우는 흔치 않다. 아산 내에서도 수감자의 수로는 가장 많다. 신창면의 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이 어떤 계통의 사람들인지는 현재 파악이 어렵다. 현재로서는 30세 전후의 주로 읍내리에 거주하고 민족의식이 강한 청장년이라는 정도만 확인될 뿐이다.

다만 박진화의 직업이 인력거꾼이라는 것은 주목된다. 시위운동 주도층에 노동자 출신이 포함돼 있다는 것인데 이는 아산의 3,1운동이 농민층 중심으로만 참여계층을 정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또한 이 운동은 봉화시위에서 면사무소와 주재소, 그리고 보통학교를 습격한 점에서 굉장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행정관서와 헌병주재소가 공격대상이 된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만 보통학교를 공격한 것은 왜일까? 일제당국과 일본인 교사가 주도하는 식민교육에 대한 저항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민족독립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얻기 위해 투쟁하면서도 지역 내에서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임재룡 기자  skyblue62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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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지역의 3.1운동 인명록(끝) [임재룡] 기자

아산지역의 3.1운동 인명록(5) [임재룡] 기자

아산지역의 3.1운동 인명록(4) [온양신문사] 기자

아산지역의 3.1운동 관련 인명록(3) [임재룡] 기자

아산지역의 3.1운동 관련 인명록(2) [임재룡] 기자

아산지역의 3.1운동 관련 인명록(1) [임재룡] 기자

아산 각 지역의 3.1운동사 - 마지막회 (염치면) [임재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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